9. 깨달음 없는 깨달음
- Editor J

- 2022년 8월 8일
- 1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8월 8일
사람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고 했던가. 몇 년 전까지 나는 이 명제를 꽤나 과격하게 해석해 “생각하고 깨우치는 것”이 삶의 본질이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하루를 보내든, 내가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는 게 없다면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함부로 단정짓곤 했다. 한 술 더 떠서, 무언가를 깨닫지 못한 상태가 부끄러워 느낀 것 없는 경험에서 느낀 점을 역으로 쥐어짜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보다 어리석은 짓도 없지만, 정말 그런 이상한 지성주의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어떤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하루를 보내든, 그 경험으로부터 한 층 성장했다고 글로써 입증해야 될 것 같았다. 한 줌 정도의 깨달음을 우주만큼 부풀려 쓰려는데 당연히 글이 써질 리가 없었다. 점점 글은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수단”보다는 “내가 부여한 거창한 결론을 논리정연하게 설득하는 수단”이 됐고, 충분히 거창하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글은 쌓여갔다. 거창한 결론과 교훈을 깨닫고 성장하는 서사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위험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의미가 뭐길래. 깨우침이 뭐길래. 교훈과 결론이 뭐길래.
일생의 대부분은 그저 그런, 의미 없는 순간들의 연속인데. 왜 삶을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의 폐쇄적인 구조에 끼워 맞추려 했을까. 왜, 그리고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더 이상 생각 없는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아직도 배우고, 생각하고, 깨우치는 과정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글도 결국 생각하고 깨우친 과정인 만큼), 이유없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화려한 결론 없이 글을 쓰고, 큰 배움 없는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잘 하고 있는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이 글을 씀으로써 한 단계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삶의 모든 면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