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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우린 노래로 대화를 하자

  • 작성자 사진: Editor G
    Editor G
  • 2022년 6월 18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9월 27일









사랑할 때 나는 바보가 된다. 이 오글거리는 문장을 쓰고 보니 더 넛츠의 사랑의 바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어느 날 말없이 떠나간대도 그 뒷모습까지도 사랑할래, 난 바보니깐 괜찮아~ 아쉽게도(?) 나는 그런 바보(?)가 되는 건 아니다. 나는 화려한 글을 쓰는 법도 잘 모르지만 그보다 더 말주변이 없다. 사랑할 때는 더더욱. 언어는 사랑에 걸려 넘어진다. 그런 귀여운 말을 좋아한다. 나의 언어는 수시로 사랑에 걸려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고꾸라졌다. 그래서 나는 노래로 대화하는 법을 터득했다. 노래로 더 많은 이야기를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짝사랑을 할 적에는 그 앨 생각하며 들었던 곡을 잔뜩 모아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보내주었고, 연애를 시작하면서는 매주 목요일을 기다렸다. 서로 팔로우를 하고 있는 스트리밍 사이트가 만들어주는 ‘Friends Mix’ 때문이었다. 한주 동안 그가 어떤 노래를 들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그 기능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12시를 기다리던 그 순간들이, 지금에 와서 떠올려도 마냥 밉지만은 않다. 좋은 노래를 알게 되면 신이 나서 가장 먼저 그에게 보냈다. 그 애가 좋아한다는 노래는 몇 번이고 들어도 질리는 일이 없었다. 가끔 문자 메시지로 내가 아끼는 가삿말을 전송하기도 했다. 이를 테면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같은 것. 출퇴근할 때, 그러니까 하루 중 가장 고되고 지친 때에는 꼭 그 애가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나만큼이나 말주변이 없는 그 사람 상상을 하면서.

그러나 그때 그 노래들을 다시 들으며 너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 노래는 우리의 추억도, 사랑도 아니다. 그건 단지 그 순간의 발화였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수단. 너에게만큼은 바보 같아 보이기 싫었던 내가 선택한. 그래서 우리가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는 사소한 우연이 그리 기뻤던 걸지도 모른다. 너도 내게 같은 말을 하고 있구나. 유치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좋아하던 그 노래가 흔해 빠진 사랑 노래였다 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저 대화를 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사랑해’ 그 한 마디가 부끄러워서, 빙빙 돌려 말하고 있었다. 너에게 향하고 있는 나의 마음은 아이유의 비밀의 화원이고, 카펜터즈의 클로즈 투 유고, 전람회의 너에 관한 나의 생각이고…


사랑할 때 나는 바보가 된다. 마음 한 줄 멋들어지게 표현할 줄을 몰라 남이 쓴 가사에 의지하는 멍청이가 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노래로 대화한다. 또 다른 누구에게 다시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보내고, 그의 플레이리스트를 기다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자꾸자꾸 전하고, 그가 좋아하는 노래를 자꾸자꾸 알고 싶어 하겠지. 내가 이 고질병을 평생 지고 살아갈 것이라는 건 명백하다. 그러나 그 사실이 나쁘지 않다.

나는 이름도 모를 너에게 동물원의 별을 띄운다. 같은 가사에 귀를 기울일, 들국화의 조용한 마음으로 답할 너를 한참 기다리겠지. 사실, 그런 바보 같은 사랑이 좋다.













Playlist

존 메이어, Fool to Love You

윤석철 트리오, 즐겁게, 음악.

동물원, 별

들국화, 조용한 마음

검정치마, 섬(Queen of Diamonds)

이소라, Track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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