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오후 4시의 [ ]
- Editor J

- 2021년 9월 29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8월 8일
“희망.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망상으로, 가장 큰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Hope. It is the quintessential human delusion, simultaneously the source of your greatest strength, and greatest weakness.)” ― Unknown or The Archictect from <The Matrix Reloaded>
‘희망’은 참 예쁜 단어다. 사전적으로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혹은 '앞으로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미래를 기대하게끔 만든다. 이 기대감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다. 희망이라는 씨앗을 마음에 품고, 열매를 맺는 그날을 위해 햇빛과 물을 주며 살아간다. 즉, 삶은 희망을 싹 틔우기 위한 노력의 반복이며, 우리는 희망이 있기에 미래를 맞이한다.
그렇게 희망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축복이다. 하지만 난 언제부턴가 이 희망이라는 단어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여전히 멋진 말이지만, 모든 희망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님을 이젠 안다.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춰주며 아껴온 내 희망이 땅에 묻힌 채 끝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희망을 마냥 아름답게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무너질 것을 쌓는 일이고, 기대하면 기대할 수록 실망하고, 기다리면 기다릴 수록 절망의 크기도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섣불리 희망을 품기 어려워진 것이다. 기형도의 <오후 4시의 희망> 속 김金 또한 이러한 희망의 모순에 대해 고민한다.
"김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나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김을 중얼거린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것과 섞였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김에게 침묵과 습관은 안정이다. 부조리에 침묵을 지키는 것, 습관처럼 순응하는 것은 이곳에서 본인을 보호하는 수단인 것이다. 그러나 김은 동시에 두렵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그것과 섞였지만, 어쩔 수 없는 침묵과 습관이 두려워 이러한 시를 쓴다.
"햇빛 한 장이 들어온다, 김은 블라인드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가볍게 건드려도 모두 무너진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네
김은 그를 바라본다, 그는 김 쪽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
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
그러나 김은 이곳의 현실을 안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햇빛 한 장이 쉽게 무너질 것을.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당황하지 않으려 하기에 당황할 것이라는 것을. 이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또 동시에 무너질 것이 남아 있는 삶을 동경한다.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결국 어리석은 시간을 마주한 김은 울음을 터뜨리고 모든 것은 엉망이 된다. 마치 예정된 것처럼 김은 또 다시 무너진다.
김은 이 도시에서 습관처럼 순응하고 침묵할 것을 택했다. 무너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포기한 채 죽음과 섞여 살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오후 4시, 햇빛이 블라인드 틈으로 새어 들어올 때면 아직 무너질 것을 갖고 있는 이들을 동경하곤 한다. 잠깐의 희망을 품는다. 그렇기에 또 다시 무너진다.
이러한 김의 행동은 모순적이다. 순응과 침묵이 그를 보호할 것을, 희망이 그를 무너뜨릴 것을 알면서도 오후 4시, 햇빛이 들어올 때면 매번 희망을 품곤 한다. 무너질 것을 알면서, 무너짐을 두려워하면서 왜 희망을 품을까. 왜 그는, 왜 우리는, 희망을 놓지까.
이에 대한 답은 섣불리 제시할 수 없다. 그저 인간에게 희망이란 강점이자 약점으로, 우리를 무너뜨리는 저주인 동시에 다시 일으켜 세우는 축복이라는 것만 명확하다.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나아가고, 넘어지고, 또 다시 일어난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무너질 일이 없음을 의미하지만, 삶을 이어갈 원동력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즉, 희망은 우리를 괴롭게 하면서도 살아가게끔 만드는 꿈인 것이다. 이 꿈을 실체로 여겨 앞으로 나아갈지, 허상으로 여겨 멈춰 설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결국 당신의 선택만이 남은 것이다. 당신은 오후 4시의 이 희망을 축복으로 여기겠는가, 저주로 여기겠는가. 희망의 부조리함에 굴복할 것인가, 다시 한번 속아넘어갈 것인가.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오후 4시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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