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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있지 않음

  • 작성자 사진: Editor G
    Editor G
  • 2021년 8월 11일
  • 2분 분량





세상의 근원이 되는 도는 ’없음’이다. 라는 노자의 가르침은 기억할만하다. 노자는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 같다고 할까. 텅 비었으면서도 (그 작용은) 다함이 없고, 움직이기만 하면 더 많은 것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채움의 연속에서 비움의 미학을 역설하는 이 말은 낯설기 짝이 없으나 왠지 맘을 편안히 만드는 구석이 있다. 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주목하는 종교라는 점에서 불교를 좋아한다. 불교의 교리 중에서는 무아無我가 꽤나 맘에 들었는데, 이는 특히 무소득을 강조한다. 자기와 자기 소유물의 고정성과 불변함에 대한 아집을 버리는 것이 곧 무소득이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도 언젠가 변하고 통제할 수 없게 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의 없음과 다른 이의 있음을 비교한 적이 있다. 왜 채워야 하는지 모를 것들로 나를 채운 일이 많다. 소유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세상에서 현자의 교훈을 우직하게 따르기에는 무언가가 없거나, 없어진다는 건 영 꺼려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에는 추억, 취향, 사랑 같은 낭만적인 이름들이 나열되곤 한다. '취향을 보여주기 때문에',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에', '내 사랑을 증명하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평생토록 지닐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은 명백하다. 몸은 죽으면 없어지고, 아끼던 물건도 언젠가는 닳고, 한때 가졌던 빛나는 생각도 언제 그랬냐는 듯 퇴색되곤 한다. 내 전부였던 사람을 증오하게 되고, 상상치도 못하게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도 있다. 매초 기민한 변화가 도래하는 세상에서는 갑자기 달라지고, 움직이고, 사라지고, 지워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더욱 소유에 집착하게 된다. 없어질 것을 알면서도 이것만큼은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영원이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배우면서도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다음은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의 일부다.

그렇게 지우고 나니 양희의 대본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화자는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건 ‘아주 없음’이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머무르는 것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각자의 이유로 없어지겠지만, 우리의 일부로서 ‘있지 않은’ 상태로 머무른다는 것이다. 우연한 순간에 콕 찔러오는 주삿바늘처럼, 간밤에 꾼 꿈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우리를 움찔거리게 한다. 반드시 ‘아주’ 있어야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원천으로 무無를 꼽은 노자의 철학과 불교의 무아, 소설의 화자 모두 없다는 사실은 아픈 것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텅 비어있다는 사실은 창조성을 띠고, 생기를 되찾는 과정이 된다. 빈 상태이기에 더욱이 채울 수 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저장이 아닌 정리임을 기억한다.


좋아하는 밴드 혁오의 노래 ‘Mer’에서는 간지러운 목소리로 로맨틱한 가사가 반복된다.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기억만큼은 세포로 머무를 거라고,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라고.


even if we face the end

thoughts are gonna stay as cells, though

all that is what I want

all that is what I want


미세한 세포로 남아 오래도록 나를 지탱할 것들을 믿는다. 언젠가 이별에도 시원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될까?








당신이 오늘 읽어야 하는 책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中 너무 한낮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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