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Fly By Day
- Editor G

- 2021년 6월 2일
- 2분 분량
내 모든 이야기는 청춘영화의 하이라이트와 같을 거라 믿었다. 이를테면 <플립> 줄리처럼, <금발이 너무해> 엘처럼 늘 위풍당당, 시련이 와도 씩씩하게 극복할 줄 아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겨우 서울에 도착한 스물의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겪는 시련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고, 나는 그걸 이겨낼 만큼 강인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세상 천지에 이런 청춘영화가 어디 있겠나, 싶었다. 언제나 날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존 메이어나 비틀즈의 음악도 쓸모없어지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날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지 못했으니까.
따뜻한 품을 떠나 온전히 내 두 발로 일어선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선 앞에 머뭇거리다 겨우 한 발 뻗는 순간이 벅차기만 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실패에 연연하는 일이 익숙했다. 그런 내게 키키의 비범한 마음이 닿아 나를 결국 일으켜 세운다.
‘마녀의 피’를 타고난 키키는 열 셋이 되면 반드시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해야 한다. 키키는 두려움의 기색도 없이, 오늘 밤 밝은 보름달이 뜬다는 라디오의 목소리를 따라 당장 바다가 보이는 마을로 떠나겠다고 당차게 외쳐 보인다. 발자국이 찍힐 만큼 먼지가 잔뜩 내린 방의 때를 벗기고 나의 것을 차곡차곡 채워 나간다.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능력을 믿고 그렇게, 낯선 땅의 하늘 위를 훨훨 날아다닌다.
키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커브 길을 지날 땐 넘어지기 직전까지 몸을 눕혀야 한다는 것, 행여 넘어지더라도 하하하 크게 웃어넘길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 혼자가 지칠 때면 누군가를 찾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스스로가 의심될 때면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것, 조금 부서지더라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굉장한 용기라는 것. 넓은 세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키키의 눈동자는 반짝거린다.
키키는 말한다. “우울할 때도 가끔 있지만, 저는 이 마을이 좋답니다.” 매일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중요한 건 단지 모든 감정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천연한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고 했다. 그래서 삶은 패치워크와 비슷하다. 색깔과 무늬,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여러 가지의 조각을 이어 붙여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모든 조각이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삐뚤어진 조각, 칙칙한 색감의 조각, 너무나 작은 크기의 조각들이 모여 결국 내가 그렇게도 그리던 새뜻한 빛의 ‘청춘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란 걸 이제는 안다. 이렇게 생각하자면 미끄러지는 것도, 밀려나는 것도 더는 무섭지 않다.
살랑대는 바람, 물결과 파도소리, 꽉 묶은 빨간색 리본, 빵집과 청어파이. 아기자기한 수식들로 가득한 이 영화는 어린 마녀 키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삐끗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리는, 하나 둘 쉼 호흡하고 힘껏 날아오를 모두의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시작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고대하여 내딛은 그 용감무쌍하고 사랑스러운 한 걸음이 오래도록 남아 다시 돌아오는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빛나는 역사가 되길.
불어오는 바람을 힘껏 맞이하면서, 여기저기 부딪히다가도 눈썹을 치켜세우고. “조금 더 힘내!”
당신에게 오늘 추천하는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글의 제목이 된 노래
Anri - Fly B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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