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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삶의 불꽃을 찾는 당신에게

  • 작성자 사진: Editor J
    Editor J
  • 2021년 5월 31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8월 19일




한 물고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그는 늙은 물고기에게 헤엄쳐가서 말했어. "바다를 찾고 있어요.“ "바다?" 늙은 물고기가 답했지. "네가 있는 곳이 바다란다." “이곳이요?” 어린 물고기가 말했네. "여긴 그냥 물이잖아요! 저는 바다를 원한다고요.“

우리는 종종 망각의 바다에 빠져 끝없이 침전한다. 내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분간하지 못하여 같은 자리를 맴돌다 가라앉는다. 바다 안에서 바다를 찾아 평생을 헤맸다는 이 어리석은 물고기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광활한 곳을 찾아 헤엄치는 것이 나를 더욱 좁은 공간에 가둔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선물해주신 위인전 세트에는 역사적 인물들의 훌륭한 생애 및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들의 공통된 교훈은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원동력 삼아 최선을 다하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삶의 목적을 찾고, 최선을 다해 그것을 이룸으로써 세상에 자취를 남기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무의식 속에 새긴다.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았다고 확신한다. 어릴 적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보게 된 공연에서 재즈 연주자가 되는 것이 본인의 운명임을 직감한 조는 그 이후로 재즈만을 위한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중학교 밴드부 지도 교사로 일하고 있는 중에도 조는 재즈만이 본인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런 조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다. 옛 제자의 추천으로 동경하던 가수의 밴드에서 연주하게 된 것이다. 위인전 속 인물들이 그랬듯, 조도 전환점을 맞이해 꿈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 하지만 현실은 짓궂고 얄미운 변수들로 가득한 법. 그는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을 향해 첫발을 내딛자마자 보기 좋게 헛디뎌 구덩이 속으로 자빠진다.


허무하게 꿈을 놓쳐버린 조는 당연히 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떻게든 돌아가 재즈라는 삶의 목적을 이루겠다며 도망쳐보지만, ‘머나먼 저 세상(the great beyond)’을 향한 길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운명으로부터 달아나려던 조는 탄생 전 영혼들이 성격과 관심사를 형성하는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에 떨어지게 되고, 탄생을 거부하는 영혼인 22번의 멘토 보르겐슨으로 위장한다. 생전의 삶을 돌아보며, 보르겐슨의 화려하고 명예로운 삶에 비해 평범하고 초라한 삶을 살았다고 느낀 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 내가 죽으면, 내 삶이 아무것도 아닌 이대로 끝날까봐 두려워.”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는 삶을 살고 떠나긴 싫다는 생각에 조는 죽음을 피할 방법을 꾀하고, 22의 불꽃(spark)을 찾아 지구 통행증(earth pass)을 발급받으면 대신 지구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조는 삶을 되찾기 위해, 22는 ‘태어나기 전 세상’에 남기 위해 불꽃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마더 테레사, 링컨 대통령, 간디를 비롯해 역사의 내로라하는 위인들조차 도움을 주지 못한 22의 불꽃을 찾는 것은 순탄치 않다. 조가 사랑하는 음악도, 맛있는 음식도 22에겐 따분할 뿐이고, ‘태어나기 전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22에게 삶의 기쁨을 가르쳐주지 못한다. 결국 조는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지만, 성급했던 나머지 22가 조의 육체에 대신 들어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그리하여 조의 몸에 들어온 22는 끔찍이 회피하던 지구에서의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삶은 흥미롭고 생동감 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22는 조의 하루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며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뉴욕의 거리에서 먹는 페퍼로니 피자와 지하철의 버스킹 공연. 머리를 이발하며 나누는 대화와 어머니의 애정어린 잔소리. 가을바람의 신선함과 떨어지는 낙엽 하나. 우리가 쉬이 지나치는 일상 속 작은 것들을 생생히 느끼고 감미하며 22는 삶 그 자체에서 본인의 불꽃을 찾게 된다.


22는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22가 불꽃을 찾게 된 계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조는 본인의 몸에 들어갔기에 느낀 감정일 뿐이라며 통행증을 요구한다. 그렇게 끝내 지구 통행증을 얻은 조는 꿈에 그리던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지만 기쁨과 동시에 공허함을 느낀다. 꿈꿔오던 삶의 목적을 이뤘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재즈가 삶의 목적이 아니었던 것일까? 내가 살아온 삶은 무엇인가? 무수히 쏟아지는 질문들을 곱씹으며 조는 지나온 삶을 회상하고, 재즈만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자전거를 타며 바라보는 하늘, 가족과 보내는 시간, 맛있는 파이와 제자들과의 수업 등 삶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조는 22에게 통행증을 돌려주고, 다음과 같은 교훈을 전달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아요. 매 순간을 소중히 아끼며 보낼 거예요.”


재즈 음악계에서 길이길이 기억될 업적과 이름을 남기고자 했던 조는 22와의 여정을 통해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훌륭한 재즈 뮤지션이 아니어도 그는 이미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아들로서, 제자 코니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선생님으로서, 그리고 22의 멘토로서 주변에 크고 작은 자취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비록 그 흔적이 위인전 속 위인들의 업적에 비해 작고 사소할지언정, 계속해서 무언가를 남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의 축복임을 깨닫는다.


조가 그랬듯 우리 또한 무언가에 삶의 목적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고, 그것에 평생을 헌신해야 한다고 착각하곤 한다. 거창한 목표를 찾고 목표를 이뤄 이름을 남기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쉬이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언급되듯이, 삶의 목적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조처럼 불꽃을 이루지 못했거나 22처럼 불꽃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행복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꼭 위대한 사람이 되어 거대한 업적을 남겨야만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의 크기와 무관하게 이 공간에서 살아 숨 쉬고,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며 나의 일부를 남기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삶의 축복이자 불꽃인 것이다. 그러니 망망대해 속 길을 잃은 물고기가 되기 전 되새겨야 한다. 삶의 방향을 알지 못하더라도 매 순간을 소중히 아끼며 살아가자고. 나의 길에 남기는 모든 것을 사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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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Soul,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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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G
Editor G
2021년 9월 14일

나의 길에 남기는 모든 것을 사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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