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Complete Love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 Editor J

- 2021년 3월 3일
- 3분 분량
우리는 대략 78억 명의 사람들과 지구를 공유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모두 다른 때와 장소에서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경험을 거침으로써 다른 가치관과 기질을 지닌 개인으로 성장한다. 그렇기에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아무리 가깝고 닮았을지언정 우리는 모두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도우려 할 때, 그 행동의 결과는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의 크기와 필연적으로 비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과 무관하게 타인의 상황과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 우리가 내미는 손은 그들에게 닿지 않을 수도 있고, 더욱이 그들이 손을 잡지 않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의 나락을 보는 것은 괴롭기에 우린 때로 그들이 원치 않는 도움을 권하고 더욱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도움의 손길이 오히려 그 사람을 옥죄는 손아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이타성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행동이 진정 상대를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힘든 상황을 보는 데에 기인한 우리의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것인지 불분명해진다.
“인간의 이타성이란 그것마저도 이기적인 토대 위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홀로 고립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괴로워 재촉하듯 건넸던 응원과 위로의 말들을, 온전히 상대를 위해 한 일이라고 착각하곤 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 내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참견을 잘 참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그런 행동들이 온전히 상대만을 위한 배려나 위로가 아닌, 그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보고 싶은 나의 간절한 부탁이라는 것을 안다. -아이유(IU), 미니 5집 [Love Poem] 6번 트랙 Love Poem 소개글 中
위 글이 말하듯, 우리는 온전히 그 사람만을 위해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아니라, 힘든 모습을 보는 것으로부터 야기된 나의 괴로움을 해소하고자 행복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글에 인용된 리처드 도킨스의 말처럼 인간의 이타성은 실로 이기성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타인을 이해하고 돕는 인간의 이타성은 복잡하고도 모순적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속 맥클레인 형제의 상황이 이를 잘 드러낸다. 형 노먼과 동생 폴은 우애 깊은 형제지간을 자랑하지만, 폴의 위태로운 상황을 직접 목격했을 때 노먼의 도움은 하염없이 간접적인 선에만 머무른다. 누구보다 가깝고 사랑하는 가족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폴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노먼이 할 수 있는 것은 폴이 다음 날 아침 약속에 제때 오기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자신과 함께 떠나기를 제안하는 것뿐이다. 이렇듯 타인을 돕는 것은 필연적으로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나, 영화의 마지막에 아버지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사랑하는 이가 곤경에 처한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주여, 저 사람을 도우려 하나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를 돕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주려던 것을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합니다.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오롯이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For it is true we can seldom help those closest to us. Either we don’t know what part of ourselves to give or, more often than not, the part we have to give is not wanted. And so it is those we live with and should know who elude us. But we can still love them –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아버지의 말처럼, 완전한 이해란 불가능하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도움이 쓸모없을 수도 있고, 원치 않는 도움을 강요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는 도움의 결과와 무관하게 그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의 도움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을지언정 마음을 완전히 주는 것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타성은 모순적이고 타인을 돕는 것은 어렵지만 복잡할 것 없이 단순히 받아들이면 될 뿐이다. 완전한 이해 없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기에, 그저 나의 사람을 오롯이 사랑하고 위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오늘 당신이 봐야 할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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