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완벽한 세상에서 완벽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남기
- Editor G

- 2021년 2월 7일
- 5분 분량
시간 속의 향기 -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만났을 때
여기 월터라는 한 남성이 있다. 그는 카메라 필름 현상가로 ‘LIFE' 잡지사에서 16년 동안이나 근무해왔다. 그러나 잡지사의 폐간과 온라인 재편성으로 인한 구조조정의 위기에 닥치며 그의 일상은 송두리째 뒤바뀐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간략한 줄거리다. 이 이야기는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디지털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잡지는 온라인에서만 보게 될 것이고, LP레코드판, 필름카메라 등은 곧 소멸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보란 듯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래 복고풍을 의미하는 ‘레트로’ 개념을 확장시켜 ‘뉴트로’, ‘힙트로’와 같은 신조어가 만들어졌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영화 <건축학개론>은 복고 신드롬을 일으켰다. 필름카메라 열풍이 불었고, 턴테이블과 LP의 판매량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이 과거 이 문화를 향유했던 세대의 향수로 시작된 것일까? 그러나 유행에 앞장서고 있는 건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디지털 네이티브, 1020세대다. 이들은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LP를 수집하는가 하면,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70, 80년대의 조명, 컵, 소품 등을 사고판다. 누군가는 남들과 다른 ‘힙’한 것을 추구하는 젊은 힙스터들에 의한 가벼운 유행이라 말한다.
그러나 한철의 흐름이라 여기기엔 레트로가 주는 막대한 위안과 위로를 무시할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술과 함께 성장해온 세대를 디지털 네이티브라 일컫는다. 이들은 기계로 가득한 차가운 세상에서 태어나,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며 경험할 기회가 감소해가는 시대에서 자랐다. 이때, 시간을 타고 흘러온 복고풍의 향기가 이들의 오감을 자극하며 결핍된 구석구석을 채운다.
가질 수 없는 너 - LP과 CD로 보는 소유
이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가지다’의 정의부터 알아보도록 한다. ‘가지다’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 것으로 하다’이다. 그러나 요즘은 가진다는 개념이 모호하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맘에 드는 사진을 발견했다고 하자. 이것을 핸드폰의 갤러리에 저장하면 나의 것이 되는가?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데이터 형태로 저장되어 공유 플랫폼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진정 ‘자기 것’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페이퍼리스 시대에 당도함에 따라 책이나 지도 등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속으로 들어갔다. 화면에 갇힌 책에는 더 이상 질감이 없고 구김도 없으며 냄새도, 소리도 없다. 이는 종이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는 유형에서 무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있다가 없어지는 것을 진화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이미 주변의 것들이 눈앞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LP와 CD가 가진 매력이 더욱 특별해진다. ‘소유의 감각’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유튜브나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는 줄 수 없는 물질적인 존재감을 제공한다. 데이터는 만질 수 없지만, LP와 CD의 딱딱한 표면은 피부로 와 닿는다. 눈으로 볼 수 있고, 두드려볼 수 있고, 먼지를 털어낼 수도 있다. 아날로그는 만져지는 물건과 감각적인 경험이 점점 사라져가는 영역에서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소유하는 기쁨을 준다. 이것이 레트로가 주는 첫 번째 위안, ‘소유’다.
너만을 느끼며 - 기계가 아니라 나 스스로 한다는 것
스마트폰이 알아서 사진의 손 떨림을 보정해주고, 다양한 필터 기능을 이용해 원하는 효과를 맘껏 줄 수 있고, 사진의 구도와 각도를 설정해주는 어플이 출시된다. 듣고 싶은 노래는 클릭 한 번이면 재생되고, 알아서 비슷한 노래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편의는 막대하게 늘어났지만, 이러한 현상이 도리어 인간 본연의 자율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편리한 시대에 굳이 불편함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필름카메라는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기에 떨리고, 고장 나기 십상이라 조심스럽게 다루어주어야 한다. 포커스를 맞추기도 어렵고, 원하는 필터를 자유자재로 갈아 끼울 수 없다. 공을 들여 찍은 사진이 흔들렸을지, 초점이 엉망일지,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아 온통 까만빛일지 인화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LP판은 어떤가? 무겁고 불편하며 예민하다. 통풍에 신경 써주어야 하고, 먼지도 자주 털어줘야 한다, 언제 휠지 모르는 불안도 있다. 복잡하고, 조심스럽고, 성가시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섬세하고 복잡한 손짓과 관리가 필요한 LP와 필름카메라를 통해 다시금 나의 쓸모를 되새기게 된다. 제한된 필름의 수에 맞추어 소중한 순간을 남기기 위해 집중해서 셔터를 누르고, 몇 없는 필름 현상소를 찾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듀레이션이 짧은 턴테이블의 음악을 계속하여 감상하기 위해 조심스레 LP를 뒤집는 모든 신중한 과정을 통해 설렘과 기쁨을 느낀다. 이는 터치 몇 번으로 듣거나 찍는 노래와 사진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특징이 된다. 기계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닌 나 스스로 한다는 것. 여기서 또 다른 위안을 얻는다. ‘느낌’이다.
넌 쉽게 말했지만 - 알고리즘과 독립서점으로 보는 관계와 경험
빅 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 기능 덕에 우리는 추천의 늪에 빠져 살고 있다. 내가 보고 평가했던 모든 기록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데이터를 토대로 수많은 추천이 쏟아져 나온다. 알고리즘을 통해 제공받는 콘텐츠는 방대하다. 다시 말해, 실제 사람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고 접촉하며 추천받는 소통의 경험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본 시청 목록을 기반으로 쉽게 말하겠지만 면대면 소통은 그렇지 않다. 알고리즘의 추천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 유대와 공감을 통해 빚어낸 대화만큼의 심사숙고나 파장이 없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알고리즘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추천받는 콘텐츠가 늘면 늘수록 소통의 결핍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알고리즘에 맞서 관계와 경험으로 승부하는 곳이 있다. 바로 ‘독립서점’이다. E-book과 인터넷 서점, 알고리즘이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있음에도 독립서점은 취향과 소통이라는 평범하지만 동시에 특별한 장점을 내걸고 우리에게 인사한다. 시인이 시집 전문서점을 내는가 하면, 그림책 전문서점, 소설 전문서점, 여행 전문서점 등 다양한 취향을 가진 서점들이 영업 중에 있다. 이러한 작은 서점 열기는 사회적 성공보다는 개인이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고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취향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새로운 문화적 욕구 측면이 강하다. 이현주 작가는 알고리즘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네 책방에만 있는 무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알고리즘이 찾아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거죠. 인간이란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잖아요. 어떤 날 어떤 기분에 어떤 책을 보고 싶은지, 그 생각이 시시각각 바뀌죠. 알고리즘이라는 건 ‘당신이 산 책과 비슷한 책을 산 다른 사람들은 이런 책을 샀다’라고 제안을 해주는 거잖아요. 분명히 설득력 있는 제안일 거예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특정한 날에 특정한 기분에서 만나고 싶은 책을 과연 찾아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걸 해줄 수 있는 건 사람이라는 거예요.
일상생활의 변수와 우연성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설 전문서점에 모인다. 서점의 주인은 좋아하는 소설을 추천하고, 소설가를 초청해 함께 이야기하며 소통하는 공간을 만든다. 또는 우연히 들린 책방에서 책을 추천받고, 모르고 지내던 취향을 발견하고, 책방의 주인 혹은 손님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이어 나가며 취향에 살을 붙인다. 세 번째 위안, ‘관계’다.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어 - 완벽하지 않은 것들로부터 얻는 위안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불완전함’이다. 레트로는 디지털 사회의 결핍을 충족시켜줄 수 있으나 결코 완전하지는 못하다. LP나 CD로 듣는 음악은 변수가 많다. 들고 다니며 듣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필름카메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기에 현상과 스캔, 인화의 모든 과정을 거쳐 내 손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사진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어느 누구에게 묻더라도 타인과의 소통에서 주고받는 추천과 알고리즘 중 무엇이 더 정확하고 완벽한지에 대한 답은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트로가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완벽해서 그를 선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글자만 잘못 입력해도 에러가 발생하는 0과 1의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완벽한 세상이다. 이 완벽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안간힘을 쓴다. 이때, 레트로는 우리에게 늘 완벽할 필요는 없다며 어깨를 토닥인다. 공들여 재생한 LP의 음질이 좋지 않아도, 인화한 필름 사진의 초점이 나가도, 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영화나 책이 영 내 취향이 아니어도, 더 만족스럽고 기쁜 순간이 있다. 결점으로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우리들의 가장 완벽한 자아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우리들의 상처가 모두 사라지기를? 아니면 시간과 과학의 손길로 우리의 결점이 지워지기를? 우리 앞에 더 많은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더 큰 친절이나 만족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아니에요. 우리는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받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욱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요.
위 글은 인간은 결국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욱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무결점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레트로가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일맥상통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레트로 열풍을 가벼운 흐름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레트로는 여요하고 완벽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벅찬 디지털 시대에서 잠시 쉬고, 위로를 받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한철의 유행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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