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날
- Editor G

- 2021년 1월 17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8일
‘나’는 외로웠다. 봄이었기 때문이다. 하필, 가장 초라하고 부끄러운 순간엔 봄의 반짝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형의 컨테이너 숙소 앞에서 30만원을 받을 때엔 개나리가 한창이었고, 도서관에는 두 마리의 배추흰나비가 날고 있다. 그 안에서 생활정보지를 훑어볼 때엔 밀크커피 마냥 따스한 봄볕이 느껴졌고, 빨간 스포츠카를 끌고 친구가 저 멀리 사라져갈 땐 완연한 봄바람에 벚꽃나무가 흔들렸다. 화자는 말한다. ‘1991년의 봄이었다.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화창한 봄이었을까.’ 총천연색으로 물들어 가는 봄 속에서 '나'가 겪는 이질감은 낯설지 않다. 꽃이 개화하고 상쾌한 바람이 부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괴리. 고작 계란프라이 하나에 무너지는 세상. 『셰익스피어』와 『사진예술의 이해』 같은 퍽 낭만적인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 생활정보지 따위를 읽고 있다는 불편함.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그 말에 어떤 분노도, 서운함도 아닌 외로움을 느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 장의 계란프라이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되는, 굳이 기둥이나 문짝이 되지 않더라도 세 대의 에어컨과 청동 보일러가 설치된 집에서 살 수 있는 친구에게서 봄의 상쾌함을 느낀 것이다. 걱정과 고민이 눅눅히 내려앉은 텁텁한 공기가 아니라, 빨간 스포츠카의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봄바람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1cm 두께의 베니어판을 사이에 두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사람들과의 동거를 시작하게 된 나는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히터를 틀지 않아 봄임에도 추운 방 속에서 한 달을 지내다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게 아닐까.’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동시에,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외로움을 다음과 같이 다루었다.
나는 한쪽 구석에 앉아 손가락처럼 생긴 초콜릿 바를 먹으며, 이따금 오렌지 주스를 홀짝거렸다. 외로웠다. 그러나 부드러운, 심지어 유쾌하다고 할 만한 외로움이었다. 웃음소리와 동료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외로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랬다면 내 기분과 주위 환경의 대조로 인해서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외로움은 모두가 나그네인 곳,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사랑을 향한 좌절된 갈망이 건축과 조명에 의해서 인정을 받고 또 잔인하게 기념되는 곳에서 피어올랐다. (67)
‘나’는 줄곧 외로웠다고 이야기하지만, 외로움은 한 가지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거리감으로 인한 외로움과, 나와 같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작은 세상 속의 외로움을 보았다.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이 여기고 가능한 마주치지 않고 서로를 피하는 게 예절인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뭔가 통해 있고, 비릿하고, 술렁이는 느낌이다.
그들은 소통을 필사적으로 피하지만, 화장실 벽 낙서를 통해 결국 소통한다.
인간은 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간다.
이하동문이다.
나 역시
이하동문이다.
인생을 사는 것이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힘들다.
그럴 수도.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혼자일 수도 있다. 이 여자와 비슷하게 생각에 잠겨, 이 여자와 비슷하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서 커피를 마시는 남자들과 여자들. 일반적으로 공동의 고립감은 혼자서 외로운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을 덜어주는 유익한 효과가 있다. 도로변의 식당이나 심야 카페테리아, 호텔의 로비나 역의 카페 같은 외로운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고립의 느낌을 희석할 수 있고, 따라서 공동체에 대한 독특한 느낌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라고 알랭 드 보통은 덧붙여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외롭지만, 회고하였을 때 더욱 애틋해지는 외로움이다.
이러한 외로움 속에서 ‘나’가 가진 전 재산인 ‘386 DX-Ⅱ’는 우리가 집착하는 소유물을 상징한다. 다리를 펴지 못한 채 새우잠을 자게 되더라도, 동기들과의 술자리를 즐길 수 없게 되어도 꿋꿋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화자는 386 DX-Ⅱ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가진 나의 전 재산이었다. 이마저 없어진다면―나는 그야말로 빈털터리란 생각이 들었으므로, 결국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나의 밀실로 돌아오곤 했었다. 누구나 자신의 전 재산이 자신의 전부라 믿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단 생각이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였는지도 기억나지 않게 저절로 버려진다.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표현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소유물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내가 남을 뿐이다. 나는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 작은 임대아파트도 마련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새우잠이 건강에 좋다는 합리화를 하지 않아도 되며, 내 몫의 계란프라이를 먹으며 살 수 있다. 갑을고시원에서의 기억은 ‘결국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라고 생각하며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지금은 어때?’라는 물음에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여전히 밀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우리가 소유한 이 모든 게 실은 ‘386 DX-Ⅱ'와 같은 것은 아닐까 걱정하지만 긍정적으로 넘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밀실에서 각자의 386 DX-Ⅱ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다들 비슷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너지지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 있고 꽉 찬 무언가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어쨌거나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거대한 밀실 속에서
혹시 실패를 겪거나
쓰러지더라도
또 아무리 가진 것이 없더라도
그 모두가 돌아와
잠들 수 있도록.
그것이 비록
웅크린 채라 하더라도 말이다.
누군가 이런 낙서를 끄적여놓았다면, 정말이지
이하동문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이 오늘 읽어야 하는 책
박민규, 카스테라 中 갑을고시원체류기
글의 제목이 된 노래
유재하, 지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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